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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학교 폭력 가해자는 사과를 했을까? 승민 군의 유서

by hbtread 2023. 5. 19.

 

대구 학교 폭력 가해자는 사과를 했을까? 승민 군의 유서

 

안녕하세요 읽으면 도움이 되는 블로그 입니다.

최근에 꼬꼬무에서 다룬 대구 학교 폭력에 대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의 공분을 샀던 자살

12년 전 뉴스에도 나왔던 자살 하러 가기전 엘리베이터 cctv 모습<SBS 꼬꼬무 캡쳐>

방송에서 승민 군 어머니는 2011년 12월 20일,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담임선생님의 연락에 집으로 돌아가던 중 경찰로부터 ‘사고가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승민 군 어머니는 “교통사고라고 생각했는데 아파트 앞으로 오라더라. 그때부터는 진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미 하얀 천으로 덮여있었는데 애를 안아보니 따뜻했다. 바닥에 주저앉아서 정말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울었다”라고 승민 군이 떠난 날을 회상했습니다.

시체 검안소에서 본 승민이의 몸은 충격 그 자체였다. 얼굴을 제외하고 온몸이 퍼렇고 노란 멍투성이였던 것이다. 검시관은 “멍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색깔이 변한다. 그러니까 이 멍든 지속된 구타의 흔적으로 보인다”라고 했습니다.

가해자들의 구타

몸에서 발견된 멍사진 <SBS 꼬꼬무 캡쳐>

자신의 집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며 극단적 선택을 한 승민 군. 조사 중 A4용지 4장을 꽉 채운 유서가 발견됐습니다. 유서에 따르면 승민 군을 폭행한 사람은 동급생인 재우와 윤호(가명) 군이었습니다.

게임을 잘했던 승민 군은 친구 재우의 부탁으로 재우의 게임 캐릭터를 대신 키워줬으나 어느 날 해킹을 당해 캐릭터가 사라졌고, 그때부터 재우의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윤호는 처음에는 같이 괴롭힘을 당하는 입장이었지만, 어느새 재우의 오른팔이 돼 함께 승민 군을 폭행했습니다.

두 사람은 24시간 승민 군을 감시했고, 돈을 뺏기도 했습니다. 또 권투 글러브, 단소, 목검을 사용해 시도 때도 없이 승민 군을 구타했고 괴롭힘은 무려 9개월 간 지속됐고, 특히 마지막 두 달 동안은 무려 30번이나 폭행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 끔찍한 폭력이 승민 군의 집에서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가해자들 판결은?

당시 두 가해 학생은 당시 14세로 촉법소년에 해당되지 않아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1심에서 재우 군은 징역 장기 3년 6개월, 단기 2년 6개월을, 윤호 군은 장기 3년, 단기 2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 재우 군은 징역 장기 3년, 단기 2년 6개월을, 윤호 군은 징역 장기 2년 6월, 단기 2년으로 감형받았습니다. 상고했으나 더 이상의 감형은 없었습니다.

가해자들은?

어느 매체의 승민 군 어머니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은 이 사건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과하러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피해자 어머니의 인터뷰가 진행된 2021년은 이들이 이미 출소한 지 한참 지난 시점이며, 피해자 가족은 혹시 이들이 찾아와서 사죄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사도 가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 사건 이후 11년이 지난 후에도 가해 학생들은 피해자 가족들에게 끝내 진정한 의미의 사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가해자들 근황은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런 태도를 보면 가해자들이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았음은 뻔뻔하도록 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97년생 가해 학생들의 나이들은 26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글쓴이도 12년 전 뉴스로 엘리베이터에서 쭈그리고 울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봤을 때 가슴이 너무도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의 아빠로서 다시금 아픔을 공감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하니 이 세상에는 인간의 탈을 쓴 사람들이 많다고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그냥 짐승이지요. 

더글로리나 표예림 사건이나 요즘 학폭 사건들이 수면 위로 많이 나오는데 가해자들이 합당한 벌을 받고 사과하는 모습들이 많이 그려졌으면 합니다. 학폭 없는 세상이 빨리 와서 우리 아이들이 맘 놓고 학교에 다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승민 군의 유서 내용을 올리겠습니다.

권승민 군의 유서

제가 그동안 말을 못 하지만, 매일 라면이 없어지고, 먹을 게 없어지고, 갖가지가 없어진 이유가 있어요. 제 친구들이라고 했는데, 서원규하고 우재관이라는 애들이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절 괴롭혔어요. 매일 라면을 먹거나 가져가고 쌀국수나, 용가리, 만두, 수프, 과자, 커피, 견과류, 치즈 같은 걸 매일 먹거나 가져갔어요.

3월 중순에 XXX라는 애가 같이 게임을 하자고 했는데, 협박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매일 컴퓨터를 많이 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 게임에 쓴다고 제 통장의 돈까지 가져갔고,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 등수는 떨어지고, 2학기 때쯤 제가 일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그 애들이) 계속 돈을 달라고 해서 엄마한테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고 담배도 피우게 하고 오만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고, 빡지까지 써 줬어요. 게다가 매일 우리 집에 와서 때리고, 나중에는 XXX이라는 애하고 같이 저를 괴롭혔어요.

키우라는 양은 더 늘고, 폭행 정도도 늘고, 수업시간에는 공부하지 말고, 시험 문제 다 찍고, 돈 벌라 하고, 물로 고문하고, 모욕을 하고, 단소로 두들겨 패고, 우리 가족을 욕하고, 문제집을 공부 못 하도록 다 가져가고, 학교에서도 몰래 따돌리고,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시키는 등 그런 짓을 했어요.
12월에 들어서 자살하자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는데,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생각나서 저를 막았어요. 그런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자 저도 정말 미치겠어요. 또 밀레 옷을 사라고 해서 자기가 가져가고, 매일 나는 그 녀석들 때문에 엄마한테 돈 달라 하고, 화내고, 매일 게임하고, 공부 안 하고, 말도 안 듣고 뭘 사 달라는 등 계속 불효만 했어요. 전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너무 죄송했어요. 하지만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 가족이었기에 쉽게 죽지는 못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몸은 성치 않아서 매일 피곤했고, 상처도 잘 낫지 않고, 병도 잘 낫지 않았어요. 또 요즘 들어 엄마한테 전화해서 언제 오냐는 전화를 했을 거예요. 그 녀석들이 저한테 시켜서 엄마가 언제 오냐고 물은 다음 오시기 전에 나갔어요.

저, 진짜 죄송해요. 물론 이 방법이 가장 불효이기도 하지만, 제가 이대로 계속 살아있으면 오히려 살면서 더 불효를 끼칠 것 같아요. 남한테 말하려고 했지만, 협박을 했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쯤에 김○○이나 윤○○이란 애들이 자세하게 설명해 줄 거예요.

오늘은 12월 19일, 그 녀석들은 저에게 라디오를 들게 해서 무릎을 꿇리고 벌을 세웠어요. 그리고 5시 20분쯤 그 녀석들은 저를 피아노 의자에 엎드려 놓고 손을 봉쇄한 다음 저를 폭행했어요. 또 제 몸에 칼등을 새기려고 했을 때 실패하자 제 오른쪽 팔에 불을 붙이려고 했어요. 그리고 할머니 칠순잔치 사진을 보고 우리 가족들을 욕했어요. 저는 참아 보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걔들이 나가고 난 뒤 저는 제 자신이 비통했어요. 사실 알고 보면 매일 화내시지만, 마음씨 착한 우리 아빠, 나에게 베푸는 건 아낌도 없는 우리 엄마, 나에게 잘 대해 주는 우리 형을 둔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거예요.

제가 일찍 철들지만 않았어도 저는 아마 여기 없었을 거예요. 매일 장난기 심하게 하고 철이 안 든 척했지만, 속으로는 무엇보다 우리 가족을 사랑했어요. 아마 제가 하는 일은 엄청 큰 불효인지도 몰라요. 집에 먹을 게 없어졌거나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고 혼내실 때, 부모님을 원망하기보단 그 녀석들에게 당하고 살며 효도도 한 번도 안 한 제가 너무 얄밉고 원망스러웠어요. 제 이야기는 다 끝이 났네요. 그리고 마지막 부탁인데, 그 녀석들은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알고 있어요. 우리 집 도어키 번호 좀 바꿔 주세요. 저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저희 가족을 기다릴게요.

12월 19일 전 엄마한테 무지하게 혼났어요. 저로서는 억울했지만,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그 녀석들은 그날 짜증 난다며 제 영어 자습서를 찢고 3학년 때 수업하지 말라고 XXX은 한문, XXX는 수학책을 가져갔어요. 그리고 그날 제 라디오 선을 뽑아 제 목에 묶고 끌고 다니면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라 하였고, 5시 20분쯤부터는 아까 한 이야기와 똑같아요.

저는 정말 엄마한테 죄송해서 자살도 하지 않았어요. 어제(12월 19일) 혼날 때의 엄마의 모습은 절 혼내고 계셨지만, 속으로는 저를 걱정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부모님한테나 선생님, 경찰 등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걔들의 보복이 너무 두려웠어요. 대부분의 학교 친구들은 저에게 잘 대해 줬어요. 예를 들면 윤○○, 김○○, ○○○, ○○○, 최○○, 이○○, 장○○, 황○○, 최○○, 전○○, 이○○, 장○○, 이○○, 김○○, 남○○, 유○○ 등 솔직히 거의 모두가 저에게 잘 해 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에요. 저는 매일매일 가족들 몰래 제 몸의 수많은 멍들을 보면서 한탄했어요.

항상 저를 아껴 주시고 가끔 저에게 용돈도 주시는 아빠, 고맙습니다.
매일 제가 불효를 했지만 웃으면서 넘어가 주시고, 저를 너무나 잘 생각해 주시는 엄마, 사랑합니다.
항상 그 녀석들이 먹을 걸 다 먹어도 나를 용서해 주고, 나에게 잘 해 주던 우리 형, 고마워.
그리고 항상 나에게 잘 대해 주던 내 친구들, 고마워.
또 학교에서 잘하는 게 없던 저를 잘 격려해 주시는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 저희 집 도어키 번호를 바꿔 주세요. 걔들이 알고 있어서 또 문 열고 저희 집에 들어올지도 몰라요.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아빠, 매일 공부 안 하고 화만 내는 제가 걱정되셨죠? 죄송해요.
엄마, 친구 데려온답시고 먹을 걸 먹게 해 준 제가 바보스러웠죠? 죄송해요.
형, 매일 내가 얄밉게 굴고 짜증 나게 했지? 미안해.

하지만, 내가 그런 이유는 제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걸 앞에서 밝혔으니 전 이제 여한이 없어요. 저는 원래 제가 진실을 말해서 우리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지만, 제가 진실을 말해서 억울함과 우리 가족 간의 오해와 다툼이 없어진 대신, 제 인생 아니 제 모든 것들을 포기했네요. 더 이상 가족들을 못 본다는 생각에 슬프지만 저는 오히려 그간의 오해가 다 풀려서 후련하기도 해요. 우리 가족들, 제가 이제 앞으로 없어도 제 걱정 없이 앞으로 잘 살아가기를 빌게요.

저의 가족들이 행복하다면 저도 분명 행복할 거예요.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우리는 한 곳에서 다시 만날 거예요. 아마도 저는 좋은 곳은 못 갈 것 같지만, 우리 가족들은 꼭 좋은 곳을 갔으면 좋겠네요.

매일 남몰래 울고 제가 한 짓도 아닌데 억울하게 꾸중을 듣고 매일 괴롭힘 당하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그리고 제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시거나 저처럼 죽지 마세요. 저의 가족들이 슬프다면 저도 분명히 슬플 거예요. 부디 제가 없어도 행복하길 빌게요.

-우리 가족을 너무나 사랑하는 막내 권승민 올림-

P.S. 부모님께 한 번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말 못 전했지만, 지금 전할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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