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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스님의 소신공양? 해외 사례와 국내 사례 자승 스님의 논란

by hbtread 2023. 12. 1.

안녕하세요 읽으면 도움이 되는 블로그입니다.

얼마 전 자승스님이라는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이 사찰을 불사르며 타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조계종은 소신공양이라고 발표하였으며 조사 당국에서도 타살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럼 자승 스님은 누구이며 소신공양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자승 스님

자승스님의 속명은 이경식입니다. 1954년 4월생이며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습니다.

1972년 18세의 나이에 해인사에서 지관(智冠)을 계사(戒師)로 사미계를 받았고 1974년 범어사에서 석암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 했습니다. 다만 출가 연도를 1969년으로 소개한 언론도 있습니다.

자승스님-소신공양
자승스님 영결식

조계종 총무부장 영담(影潭)에 따르면 이는 “종회의원 초선 때 부족한 법랍(法臘)을 채우려 앞당겨 적은 것으로 훗날 문서 견책(경고)을 받고 바로잡았는데도 이 사실을 모르는 기자들이 오기(誤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승의 첫 번째 스승은 제9대 총무원장을 지낸 경산(前 적조사 주지), 두 번째 스승은 제30대 총무원장을 지낸 정대(正大·前 용주사 주지)입니다.

불가에서는 은사를 바꾸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지만 자승스님은 경산이 일찍 사망해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소신공양

소신공양이란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공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원칙적으로 자살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자살을 권장하는 종교가 제대로 된 종교로 취급받을 리가 없습니다. 석가모니도 소신공양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불교 내부에서 소신공양, 그러니까 인신공양이 아주 없었던 일은 아니지만, 극히 드문 일입니다. 살생을 금하는 종교가 분신자살을 부추길 이유가 없습니다.

소신공양 사례

해외 사례

근세사에서 가장 유명한 소신공양은 과거 '월남'에서 불교 탄압에 맞서 항의의 뜻으로 승려인 틱꽝득이 분신 자살한 일입니다. 그 당시 베트남은 한국처럼 남북으로 갈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세력이 각각 소련과 중국 그리고 미국을 등에 업고 이데올로기 대리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월남'의 대통령이었던 응오딘지엠은 기득권 세력이었던 지주들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특히 응오딘지엠의 아내는 광신도 수준의 가톨릭 신자로 남편을 사주하여 월남을 가톨릭 국가로 만들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을 대리하여 전쟁을 치르던 월남은 불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였습니다. 월남은 잘 알려진 대로 불교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소수의 월남 권력 지배층은 식민지 시절에 통치 국가인 프랑스와 협력하면서 수입한 종교인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가톨릭을 믿어야 돈벌이가 더 잘 되고 권력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가톨릭 신자인 기득권층은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권력과 돈만 믿고 대다수 민중이 믿고 있는 종교인 불교를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1963년-경향신문-기사
1963년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 틱쾅득의 소신공양

이에 항의하던 불교를 대표하여 승려 틱쾅득이 1963년 6월 당시 월남의 수도 사이공의 캄보디아 대사관 앞에서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분신 자살했습니다. 이 장면을 미국의 맬컴 브라운이 찍은 사진은 그해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가톨릭이라는 지배 종교의 탄압에 맞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불교라는 민중의 종교를 지키려 한 틱 쾅 득의 죽음은 소신공양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다음 해외 사례는 티베트의 독립을 요구하는 승려들의 소신공양이 있습니다.

중국의 통치하에 있는 티베트에서는, 승려는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심지어 젊은이들과 청소년들까지도 소신공양으로 중국의 학정과 폭압통치에 항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는 티베트 불교와 그들의 영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는 '비폭력'을 가르치기에, 무장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소신공양으로 항거한다고 합니다.

국내 사례

태고종 충담스님
1998년 6월 27일 새벽, 경기도 가평군의 감로사 근처에 손수 좌대를 만들고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불을 붙여 소신공양하였습니다. 불자로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알려진' 최초 소신공양입니다. 분단된 국토의 통일과 사회의 안녕, 헐벗음과 괴로움이 없어지며 종단이 화합해 불국토가 앞당겨지길 기원한다는 내용의 열반송을 남겼습니다. 세수 85세, 법랍 69세였습니다

조계종 문수스님

2010년 5월 31일,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사직리 위천잠수교 앞 하천 둔치에서 유서를 남기고 소신공양하였습니다. 향년 47세. 유서 내용은 "4대 강 사업을 즉각 중지하라,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이 긴급 기자회견 및 조계사 경내에 31일 밤부터 분향소를 설치하고 조문객을 받았으며,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퇴휴 스님과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 현각 스님이 현장에 급파되었습니다.

평소 스님이 기거하던 선방의 세간은 텔레비전 1대, 서랍장 하나가 전부였고, 식사도 하루에 1끼만 먹을 정도로 수행에 정진해 온 상태였습니다. 방 한 귀퉁이엔 50cm 높이 2 덩이로 스님이 보던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문이 쌓여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사회의식이 매우 깊었으며, 평소 동료 승려와도 4대 강 관련해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조계종 총무원은 평소 통도사, 해인사, 묘관음사 등의 선방에서 참선 정진만 해오던 수좌가 갑자기 성불하였기 때문에 충격적이라는 입장이었으며, 고인이 만 생명을 살리기 위한 소신공양을 감행한 만큼 영결식은 조계종단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원스님

2017년 1월 7일 박근혜 정부를 규탄하는 의미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고 동월 9일 입적했습니다.

자승 스님 논란

자승스님은 평소에도 지나치게 정치에 밀접히 개입하는 스님이었습니다. '정치 승려'라는 비판을 조계종 내외에서 자주 들었다고 합니다. 이명박, 윤석열 등을 지지하였으며 선거 운동 활동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자 대한 불교 조계종에서도 설왕설래가 오갔는데 그중 총무원장 선거 당시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조계종 노조원들이 이를 비판했으나 해당 노조원들을 자승의 제자들이 폭행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논란이 격화되었습니다. 

조계종 혁신파에서는 자승을 조계종의 흑막으로 표현하면서 비판했습니다.
총무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조계종의 상왕으로 불리면서 행보가 비판받았습니다. 심지어 머리를 깎지 않고 장발을 해 조계종 승려들에게 고발당했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의 총무원장까지 지낸 승려가 사찰에 방화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사망 과정마저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칠장사는 궁예가 유년시절을 있었던 곳이고, 신라시대인 636년부터 전해 내려온 유서 깊은 사찰로서, 사찰 자체가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경내에는 국보 1점(오불회 괴불탱), 보물 3점(혜소국사비, 삼불휘 괴불탱, 대웅전)이 각각 지정되었습니다.

비록 화재가 난 요사채는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 아니었으나, 건조한 가을에 산속에 자리 잡은 사찰에서 발생한 화재였기에 자칫하면 대형 산불로 번질 수도 있었습니다. 승려가 유서 깊은 사찰에 방화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내장사 방화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일각에서는 자승 스님은 개인적인 문제로 자살을 선택했는데 소신공양이라는 포장을 씌워준 거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종교의 가르침보다는 종교의 힘으로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며 온갖 비판을 받아왔던 자승 스님이 화재를 일으킨 것은 문화재 가치가 있는 사찰이었습니다.

조계종은 자승 스님을 5일장을 지낸다고 합니다. 여전히 조계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자승스님이 조계종을 비판하며 소신공양을 했을 리가 없을 듯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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